전산학은… 소위 말하는 “기본”에 해당하는 커리큘럼이 아주 작은 것 같다. 몇년간 2학년 수업에서 정말 아무거나 가르치고 있는데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전산학을 배우는 방법에 대한 메타학습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종종 커리큘럼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그리곤 다 잊고 그날그날 생각나는대로 수업한다. 놀랍게도 가끔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학생으로부터 듣기도 한다.
전산학은… 소위 말하는 “기본”에 해당하는 커리큘럼이 아주 작은 것 같다. 몇년간 2학년 수업에서 정말 아무거나 가르치고 있는데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전산학을 배우는 방법에 대한 메타학습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종종 커리큘럼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그리곤 다 잊고 그날그날 생각나는대로 수업한다. 놀랍게도 가끔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학생으로부터 듣기도 한다.
7년 박사 프로그램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들었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내 경험으론 이것저것 잡다한 경험이 개성있는 학자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7년 박사는 논문을 쓰는데 커리큘럼을 집중해야 할텐데 그러면서 너무 동질적인 학자 집단을 키우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밤새워 납땜하며 21세기에 이딴거 왜 배우냐고 궁시렁거리던 경험이 없다면 지금 하드웨어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 사람들이랑 노래방 갔다가 왠 아저씨한테 기습뽀뽀를 당했던 경험이 없다면 조직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창의성이란 벽돌을 쌓으면 생기는 그늘에 자라는 잡초같은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탁월함은 본질적으로 랜덤 프로세스를 통해 탄생하는 것이다. 7년 박사는 랜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우리 학계에 더 많은 랜덤성이 공급되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르치는 일을 하다보니 모든 종류의 교육자료를 볼때마다 제작 의도를 가늠해보곤 한다. 영유아용 수학 동화를 보는데 0의 동기에 대해 말하기를 0이 있어야 1과 10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시각적으로 직관적인 설명이긴한데 0의 개념을 잘 전달하진 못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때 수학을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에 따르면 0은 덧셈의 항등원이다. 따라서 기수법에서 빈자리를 채우는 용도로써 0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0이 10과 1을 구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오히려 그 사례는 기수법의 동기로써 사용해야할 것 같다.
그렇다면 유아들에게 덧셈의 항등원 개념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넘버블럭스>가 가장 나은 접근을 하고 있다고 보는데 여기선 0이 입만 있는 친구로 등장하고 다른 친구랑 합체하면 그냥 사라진다. 덧셈의 항등원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유아에게 덧셈의 항등원 개념을 제시하는게 과연 효율적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1과 10을 구별하기 위한 용도로써 0을 제시하는게 학습 단계에 맞는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동화를 보면서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는데 여하간 우리 애들은 고등학교때까진 수학을 좀 좋아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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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한국 교육과정에 0을 기수법의 빈자리를 채우는 값으로서 동기부여하는 원칙같은게 있나보다. 올해에만 벌써 세번 봤다. 그러면서 점점 0은 덧셈의 항등원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기수법은 그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동기부여해야한다. 그와 별개로 0은 덧셈의 항등원이다.
대한민국 평균수명이 80-86 정도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니 다른 울림이 있었다.
학문적 성취를 논문 편수로 평가하지 말라는 정론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줄지어 있는 상황에서는 이 친구들 졸업에 필요한 최소 논문 편수와 같은 지표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좋은 논문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선생으로서 학생의 졸업에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나는 논문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그다지 소질이 없다는 것을 지난 다년간의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렇다면 일단 열심히 많이 쓰고 그 중에서 좋은 논문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 아닌가 싶다. 난 학문이란 랜덤성을 탐험하는 것이며 이에대한 왕도는 없고 성실함만이 답이라고 믿는다.
조직의 리더로서 중요한 과업은 바로 운을 불러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굿을 해야?) 열심히 하면 뭔진 잘 모르겠지만 일이 잘 풀리는… 에서 “뭔진 잘 모르겠”는 것이 사실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학계는 그나마 이게 좀 설명이 되는 분야이다. 학교 밖은 어떨지 무섭다…
오랫동안 같이 지낼 오피스 메이트…
https://space.bilibili.com/457173750/channel/collectiondetail?sid=1704027
내가 빌리빌리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약 15년전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를 접하고 나는 보수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 우익에게도 마침내 자살의 기회가 왔다.”
“… 우리 앞에 있는 MIT도 KAIST가 …” 아무리 미래지향적인 말이라 하더라도, 학교에서 나오는 공식 메시지에 이런 문구가 있는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The real University, he said, has no specific location. It owns no property, pays no salaries and receives no material dues. The real University is a state of mind. It is that great heritage of rational thought that has been brought down to us through the centuries and which does not exist at any specific location. It’s a state of mind which is regenerated throughout the centuries by a body of people who traditionally carry the title of professor, but even that title is not part of the real University. The real University is nothing less than the continuing body of reason itself.”
― Robert Pirsig,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ainance